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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정리중)>

엄마, 내가 엄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뭐였을까? [엄마와의 2박 3일 경주 여행기]

 

 지난 <2014 Drawing W/S>할 때, 제 2014년 10대 계획 중에는 '엄마와의 1박 2일 여행하기'가 있었습니다. 한 동안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얼마나 많은 것을 행동했을까 점검 차 리스트를 보니, 여행하기가 덜컥 남아 있기도 하고 2014년이 얼마 남지 않아 '에이~ 모르겠다'란 마음으로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엄마, 나랑 여행 갈래?'

 '그러자~ 엄만 토일월 괜찮아~'

 

 의외로 쉽게 진척된 우리의 여행은 서울과 부산 사이의 도시 중 '경주'로 당첨되었습니다. 아마 얼마 전에 영화 '경주'를 본 게 머리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여행 일정을 계획하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어서 묵을 곳만 미리 예약 및 결제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물론, 아들은 저와 한 몸이므로 우리 모녀 여행의 깍두기가 되었지요.

 

 

 

 

<아들아, 이번 여행 잘 부탁한다>

 

 경주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혼자 다짐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첫째, 엄마와 말다툼하지 말 것, 엄마의 말을 끊거나 반박하기 보다는 경청해 드리고 맞장구쳐 드릴 것. 둘째, 계획하지 말 것, 마음과 몸을 최대한 여유롭게 움직일 것, 셋째, 엄마와 아들이 행복한 거라면 그것을 최우선으로 둘 것.' 이렇게 말입니다.  

 

 

 

 늘 KTX라 하면 [서울>부산] 코스로만 타다가 낯선 역에 내린 기분은 색달랐습니다. 뭔가 예상치 못한 전개를 맞이하는 두근거림이랄까요. 내 생애 또 언제 신경주역에 내려보겠어란 마음을 먹으니 모든 것이 하나하나 섬세하게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의 말투나 옷차림부터 역사 내의 인테리어까지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역사를 나와, 신경주역 앞에서 만나기로 한 엄마를 기다려 우리는 만나 경주 시내로 향했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일하고 온 엄마를 위해 곧장 호텔로 향했습니다. 호텔 가는 길, 엄마는 운전하면서도 내내 아들 쳐다보며 헤벌쭉 웃느라 아들 손 꼭 쥐어 주느라 정신 없으셨습니다. 그 짧은 호텔 가는 길에도 몇 번이고 엄마와 딸 간의 투닥거림이 진행될 뻔 하였으나 미리 기차 안에서 세운 스스로의 목표를 상기하며 엄마의 모든 말을 고개 끄덕이며 들어드렸습니다. 중간 중간 개입하여 엄마 그건 이렇게 했어야지~하고 잔소리 하고 싶은 맘 꼭 누른 체 말입니다. 역시 효과는 있었습니다. 엄마의 흥은 점점 더 커져 갔으니까요.

 

 

 <이번 여행 스냅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

 

 <아들은 외할머니를 꼭 안습니다. 우리 엄마는 치유받습니다.>

 

 호텔에 들러 짐을 풀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엄마 짐은 어마어마했습니다. 딸, 손자 먹일 거라고 찐 감자 한 보따리, 사과 배 한 보따리, 떡 세 봉지 등 마치 잔치 상 차리려고 챙겨온 듯 했습니다. 감자들은 갓 익혀 온 거라 봉지에 뽀얗게 물기가 차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엄마, 그냥 오지. 힘들게~'라고 말이 나오려는 걸, '엄마, 우리 둘이 먹일 거라고 이렇게 정성스레 가져와 줬구나. 고마워.'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참, 딸은 엄마에게 잔소리 안 하고 칭찬 인정해 주기 어려운 DNA라도 있나 보다라 생각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휴식과 사랑'이었으므로 호텔에서 차를 가지고 나오기 보다는 호텔 주변 관광지에 도보로 이동해서 가볍게 보고 돌아오는 거라서 근처에 있는 <대릉원>에 가 엄마와 아들과 산책을 했습니다.

 

 '야, 사진 좀 찍어라!'라고 엄마는 연신 제게 요구했고, 저는 열심히 그들을 찍어주는 찍사 역할을 했지요. 하도 재촉을 자주 해서 지겹단 티를 냈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는 그 모든 순간들을 다 기억하고 싶을 만큼 소중했나보구나 싶습니다. <대릉원>안의 <천마총>도 보고 나오는 길, 아들이 갓 시작한 걸음마를 열심히 엄마에게 선보였고, 우리 엄마는 그걸 보며 입이 찢어져라 크게 웃었습니다. 마치 그 <대릉원>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손자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보여주듯 말입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가 저렇게 환하게 웃는 걸 본 게 언제였더라란 생각했습니다. 제 동생과 저는 엄마 속만 늘 썩여 드린 것 같았는데, 제가 낳은 제 아들은 우리 엄마를 저리 매 분 매 초 웃게만 만들어 드리니, 저보다 제 아들이 낫구나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밀면 전문점에서 만난 6000원 황태짬뽕> 

 

 우리는 맛집을 찾아서 가는 수고를 포기하고, 우리의 운이라 생각하자며 마음에 끌리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밥 먹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여행의 별미 아니겠냐며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재밌게도 음식점 하나 없는 거리에서 겨우 만난 밀면 전문점에서 '황태짬뽕'을 시켜 보았는데 그 맛이 아주 꿀맛이었습니다. 

 

 또, 제 아들은 얼마나 효자인지요. 엄마와 외할머니가 저녁 먹는 타이밍에 맞추어 잠들어 주시니, 저는 등에 아들을 업고 엄마와 평화롭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팥빵 하나 갓 만들어 파는 곳에서 사서 손에 쥐어드리기도 했지요. 참 신났습니다. 이런 느린 저녁이.

 

 

 호텔로 돌아와 셋이서 같이 욕조에 앉아 따뜻하게 몸을 데우고 서로에게 바디로션을 발라 주며 소소한 농담도 하고 엄마가 가져 온 과일도 먹고 하며 그렇게 첫 날 밤을 보냈습니다.  

 

 

 

 둘째 날 아침, 일어나 아침이 밝아오는 경주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서울과 달리 높은 건물 하나 없고, 기와장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줄이어 있는 것을 보니, 무언지 모르게 평화로움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셋이 쪼르르 조식 먹으러 내려갔다 올라와 짐을 싸서 (엄마가 경주에 오면 꼭 가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석굴암으로 갔다가, 급격히 피로를 느끼는 엄마와 아들을 위해 두 번째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두 번째 숙소는 전통 한옥으로 예약해 두었었는데, 엄마가 보자마자 너무나 기뻐해 주셔서 저까지 뿌듯했습니다. 숙소에 짐 풀자마자, 오전 여행에 지쳐 한숨 잠든 엄마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여행해 봤자 셋이서 돈 50만원인데, 아끼지 말고 여행을 자주 와야 겠다. 엄마가 살아 생전에 이렇게 여자끼리 여행 다니는 게 10번은 할 수 있을까.'라고.

 

 

 

 사실 처음이었습니다. 엄마와 둘이서 여행을 한 것은. 아니, 그 전에는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해 볼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지요. 20살 때부터 혼자 자립해서 매 삶이 투쟁 같았고, 엄마와는 가끔 부산 갈 때 만나고, 명절에 만나고, 안부전화한 게 다였으니까요. 그나마 아들을 출산한 후로 Facetime을 자주 해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늘어났었습니다. 

 

 

 엄마와 여행하며, 엄마가 제 아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을 때, 제 아들을 보며 장난칠 때, 배꼽을 잡고 웃으며 넘어갈 때 그 행복한 모습들을 바라보며, 엄마가 나 어릴 때 저렇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봐 주었을까. 우리 엄마의 요즘 삶에 이토록 밝게 웃어본 게 언제였을까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아들과 엄마가 저 멀리서 쿵짝쿵짝 장난치며 히히히 웃어 넘어갈 때,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엄마의 지난 삶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이 싸우고, 서로에게 언성을 높였을까. 저 배에서 내가 나왔는데, 저 젖을 먹고 내가 컸을텐데, 우리는 수없이도 서로를 부대끼며 안고 살았을 텐데. 20살 넘어선 자기 혼자 큰 줄 알며 어찌나 엄마랑 많이 다퉜던지, 이 못난 딸은 아들을 출산하고 자신도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의 삶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나 2살 때 고작 26살이었는데 말입니다. 무얼 알았을까요. 그 예쁜 소녀가. 얼마나 어린 내가 예뻤을까요. 자신이 낳은 첫 딸이. 자신의 엄마를 일찍 잃고, 아버지도 잃고 친정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 우리 엄마에게 나란 존재는 자신이 만든 첫 가족, 유일한 피붙이였겠지요.

 

 

 한 시간 넘게 자고 일어난 엄마와 숙소 근처에 있는 <첨성대> 쪽으로 산책을 다녀오며 셋째 날은 경주 말고 엄마 아버지 계시는 산소에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엄마는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으로 알겠다고 하셨는데, 기분 좋아보이셨습니다.

 

 

 

 

<엄마, 딸, 그 딸의 아들. 이렇게 3대가 간 산소: 두 사람의 얼굴은 음영처리합니다>

 

 셋째 날, 잘자고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갔습니다. 조식을 먹는 데 참 재밌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2인분이 나왔는데, 저는 제 밥을 제 아들을 먹이고, 그러다 보니 제가 많이 못 먹자 엄마는 저를 먹이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함께 하는 3일 동안 이와 같은 장면은 계속 되었었습니다. 어떤 음식이 있으면 저는 제 아들 생각해서 호호 불어 제 아들 입에 넣고, 그러고 있는 제 입에는 우리 엄마가 음식을 넣어 주셨지요. 엄마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조식을 먹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에 있는 무주로 우리는 떠났고, 남겨두었던 과일에 소주 한 병 사서 산소 앞에 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 드렸습니다.

 

 '아버지, 엄마. 나 왔어.'

 

 엄마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인사를 짧게 하시더니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그 산소 앞에 서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외할아버지 산소에 한 번 도 온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외할아버지, 성향이 왔어요.'

 

 짧은 인사와 함께 우리 엄마를 낳아줘서,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예전에 나 유치원 다닐 때 자전거로 데리러 와 줘서 고맙다고, 얘는 내가 낳은 아들이라고 할아버지께 종알종알 이야기 했습니다.

 

 

 

 

 

 엄마는 어머니가 아닌 엄마인가 봅니다. 우리 엄마도 외할아버지께는 아버지라 불러도 외할머니께는 엄마라 부르는 걸 보며 생각했습니다. 경주로 떠난 여행은 이렇게 무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저는 처음 스스로와 약속했던 3가지를 끝까지 지켰고, 이렇게 제 인생의 엄마와의 단둘이 떠나는 여행의 첫 번째는 시작되었습니다. '나중에 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하고 지금 할 수 밖에 없는 것에 집중하자'며 TV도, 핸드폰도 멀리하며 '지금 여기'에 집중했던 이번 여행. 지난 10여년의 모녀 사이에 있던 냉전에 작은 봄이 찾아오는 그 출발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큰 돈이 들 것 같아서,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아서 여행이란 건 늘 미루게 되었었는데, 단 50만원에 엄마와 저는 죽어도 후회 안 할 멋진 추억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엄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뭘까? 있기나 한 걸까?'라고. 무주 산소 앞에서 처음 들은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 경주 곳곳을 걸으며 들은 엄마의 요즘 생활 소식들은 참 낯설었습니다. 네이버 연예 뉴스를 볼 시간에 엄마와 톡을 더 주고 받거나 Facetime을 더 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엄마,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 같은 엄마.

 우리 둘이 여행을 아무리 열심히 다녀도 100번은 될까요.

 

 설사 100번 넘게 여행을 다녔다 할지라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더 많이 못 다닌 것을 후회할 겁니다.

 

 그래서 이젠 더 자주 다닐 겁니다.

 엄마와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