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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정리중)>

[Book Review] 공지영 작가의 가장 사적인 영적 기록들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2001), 2(2014)를 읽고

이 글은 우주보다 큰 존재가 초라하고 불쌍한 여자에게 접촉해 온 기록이다. (2p.6)

 

공지영 작가와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로 처음 만났다. 그녀의 문체에 반한 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집필한 책은 대부분 읽어왔고, 몇 권은 소장하고 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2’는 그러한 그녀가 집필한 책들 중 가장 사적인 기록들이다. 그녀의 강점인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소설 등에서 간간히 드러났던 그녀의 신에 대한 생각, 신과의 관계들을 직접적으로 풀어낸 자성적 에세이이다. 1권은 2001년에, 2권은 2014년에 기록되어 한 작가의 13년이란 세월 전후의 영적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은근 2권이 1권보다 두꺼워진 것을 생각해 그만큼 그녀의 영성도 깊어졌단 근거가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머릿속에 풍부해야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녀는 이 책들에서 그 동안 보여주었던 열렬한 지성인이 아닌 그저 신 앞에서 초라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한 명의 존재이다. 그런 그녀를 따라 우리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그녀가 다닌 수도원들의 이야기이다. 목차마저도 그녀가 들른 수도원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러한 수도원 기행 이야기 중 특히 우리가 매력적으로 느낄 법한 것은 역시 여행이 진행됨에 따라 그녀가 갖게 되는 통찰의 흐름, 자기 자신의 깨짐의 과정 아닐까 싶다. 그녀는 수도원에 들를 때마다 자신의 과거, 내면, 관계 등의 여러 측면에서 수없이 깨진다. 깨지고 부서지며 그녀는 자신과 하느님을 만나 간다. 이 과정은 우리 자신도 끊임없이 돌아보게 한다. 자신은 누구인지, 자신과 신의 관계는 어떤지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아버리곤 독자인 우리에게도 당신은 어떤가요?’라고 자꾸 말을 걸어온다. 이 외에도 책에는 그녀의 지인, 인맥, 과거 등의 사생활 이야기와 여행 중 느낀 그녀의 진솔한 감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여행 에세이답게 각 수도원 관련 정보와 사진 등이 덤으로 함께 하고 있다. 읽고 있노라면 마치 여기 수도원에 다녀온 것만 같다.

 

이 책은 3가지 묘미가 있다. 하나, 그녀의 수도원 기행, 그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며 그녀와 하나님 간 만남을 엿보는 기쁨이다. 그리고 둘, 그 엿봄을 이어가다 괜스레 그녀가 갖는 내적 통찰에 감탄하며 나 자신도 깨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셋, 그녀가 계속 화두로 던지는 진리에 따르면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밑줄 긋게 되고 감탄하여 필사하게 되는 문장들은 이 책을 통해 하느님께서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 아니겠는가. 이렇게 여행을 다녀온 건 공지영 작가이고, 하느님과의 만남을 한 것 역시 그녀인데 이 책을 읽으며 따라가다보면 독자인 나도 내 안의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녀의 기행은 술술 읽혀가면서 동시에 그 여정에 임하는 독자 자신도 역시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 대한 고찰을 한 단계씩 깊이 있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밑줄 친 문장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 믿는 사람들이란 사랑하는 사람들, 희망 없이, 대가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 상처 입은 얼굴에서 새벽빛을 뿜어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p.7)

  • 그런데 그 다음 날 마치 신이 내게 귀를 기울이고 있던 것처럼 전화가 걸려 왔던 것이다. (p.28)

  • 이러니까 부처님이 인간들이 죽음을 잊고 사는 게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라고 하셨구나싶었다. (p.31)

  • 이제 내게는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백back이 생겼어. (p.124)

  • 사람을 향해 웃어 주는 것, 이보다 더 큰 기도가 또 있을까. (p.134)

  •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기 전에,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 (p.214)

  • 신에게 돌아가 항복을 선언하고 내가 자유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사실은 전혀 자유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나서 나는 비로소 나 스스로의 강박과 어둠으로부터 서서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p.214)

  • 그러니 예수님이 너희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복음 25,40)라고 하셨던 것은 혹여 아닐까. (p.216)

  • 수도원은 꼭 수도원 건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수도원에 그토록 가고 싶어 수도원만 찾아다니는 기행을 하면서 수도원과 기행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건 그냥 내 삶의 어느 날이란 걸 알게된 것이다. (p.226)

  • 사람 사는 곳이 사실은 다 수도원이라는 생각 (p.230)

  • 자신에 대한 믿음이 바로 신심의 출발이며, 우리들이 믿어야 할 신은 우리들 마음 가운데 있다.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을 긍정할 수 없다. (p.247)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 나는 모든 일의 배후에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 (p.45)

  • 가난이란 이 모든 것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p.57)

  • 하느님의 가호加護로 굶지도 않고 살고 있다. (p.65)

  •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그러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다. (p.89)

  • 우리는 가끔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우리의 배심원으로 앉혀 두고 언제까지나 피고석에 앉아 변명을 지속하려고 한다.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안젤름 그륀 신부님) (p.125)

  • 다른 건 다 주님 뜻대로 해 주십시오. 그러나 다만 당신과 함께 걷게 해 주십시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주님, 아이들을 두고 하는 이 기도가 진심임을 당신은 아시기에 저는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p.204)

  • , 하느님 하시는 일이 이렇다. (p.280)

 

 

공지영(2001).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분도출판사

공지영(2014),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분도출판사

작성일: 2017-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