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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정리중)>

모든 벽에는 ‘문’이 있다

모든 벽에는 이 있다

 

벽을 보고 있었습니다. 멀리 있을 때는 벽이 있는 줄 몰랐는데, 걷고 또 걷다보니 어느 새 벽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벽은 제 키보다도 훨씬 높아 그 너머를 감히 넘볼 수 없었고, 그 두께는 제 몸보다 몇 배는 두꺼워 감히 부수고 나갈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찌할 도리 없이 벽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벽을 바라보면 볼수록 더더더 커져 그것이 곧 제 세상이 되었습니다.

 

갑갑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누군가에게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거기 누구 없냐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가 달려와 이 벽을 깨부숴 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 벽은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온전히 제 힘만으로 부숴야하는 제 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매일 그 벽 앞에 서서 어떻게 하면 이 벽을 부술 수 있을까, 이 벽을 넘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몇 차례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거듭된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고, 그럴수록 저는 더 지쳐갔습니다.

 

오늘도 다를 바 없이 그 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넘어서게 할, 내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지?그 질문에 바로 한 단어가 올라왔습니다. ‘진심(盡心).’ 진심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정성스레 품었습니다. 진심을 품고 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늘 앞으로만 바라보았던 벽을 위 아래 옆 모두 훑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놓인 작은 분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분필을 쥐고 그 벽에 을 그렸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크고 두꺼웠던 벽에 이 생겨나고, 곧이어 문이 열렸습니다. 순식간에 쉽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빛이 쏟아졌습니다. 오랜만의 빛이었습니다. 따뜻했습니다. 벽 너머에 이런 밝은 빛이 있었구나란 생각에 복받쳤습니다. 너무 좋아서 앞으로 걷고 또 걸었습니다. 밝은 빛 속에 안겨 한참을 걸었습니다. 벽을 마주보고 있었던 과거가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황홀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봤습니다. 뒤를 돌아본 저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 벽 앞에서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아올리며 벽을 더 완고하게 만들고 있는 제가 보였습니다. 저는 제가 만든 벽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너는 늘 그 모양이야.’, ‘네가 그걸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 새겨진 벽돌들을 한 장 한 장 쌓았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저를 가두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완고하던 벽을 넘어 나갈 수 있게 한 것은 벽을 부순 것도 아니고, 뛰어 넘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벽에는 나가는 문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을 뿐이었지요. 벽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했습니다. 제가 가진 강점을 기억했습니다. 벽에 문을 그렸습니다. 벽을 벽이라 느끼지 않고, 문을 통해 나가는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문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도, 성향아. 나는 네가 이걸 결국 해낼 수 있음을 알고 있어. 조금 낯설 뿐이야. 원래 하던 대로, 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담아서 그저 너답게 하면 되. 잘할 필요 없단다. 할 수 있는 만큼 정성 다해 하면 되. 너를 믿는다.’ 그래요, 모든 벽에는 문이 있었습니다.

 

 

[사진: 자문자답 시즌 1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