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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정리중)>

나는 나의 압력을 환영한다

나는 나의 압력을 환영한다

 

저는 지금 강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커다란 콘크리트 벽돌 하나가 내 머리, 어깨, 배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심장에는 험상궂게 거대한 괴물의 제 주먹보다 2배는 클 우람한 주먹이 저를 부서져라 내리치는듯한 통증을 반복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아픕니다. 눌립니다. 쉽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벗어나고 싶다였습니다. 회피하고 싶습니다. 압력은 분명한 고통이기에, 유쾌한 경험은 아니기에 벗어나고 싶습니다. 내게 온 압력을 원망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력이 제게 다가온 이유를 압니다. 바로 그것이 창조의 자연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봄의 새싹은 추운 겨울을 통해 두껍게 말라버린 맨 땅을 머리로 뚫고 나올 수 있는 힘을 응축할 수 있고, 갓난아기는 안전했던 엄마의 자궁에서 좁디좁은 산도(産道), 생명으로 태어나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크나큰 고통을 온 몸으로 느끼고 비틀며 나온 뒤에야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구구단 암기가 그렇게 어려웠지만 해내고 나서야 슈퍼에서 뭘 사도 그 가격을 금방 곱할 수 있고, 운동 뒤에 엄청나게 당기는 그 불편한 느낌을 겪고 나야 그 부분에 근육이 생깁니다. 그렇게 생명에게 찾아오는 압력의 또 다른 말은 창조입니다.

 

오늘 저는 다짐합니다. 제게 다가온 이 압력을 유쾌하게 환영하겠노라고. 물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런 저에게 또 속삭여봅니다. ‘, 사실 너 생각보다 많은 걸 해 왔더라. 그거 다 네가 한 거였어. 에이, 애도 낳았는데? 이번 일도 결국은 다 지나갈 거야. 해낼 거야. 그럼 이왕 하는 김에 유쾌하게 즐겁게 환영하자. 이 압력을 환영하자. 결국 이 압력을 지난 후에 너는 뭔가를 창조하고 있겠지? 잘 하고 있어.’하고 말이지요.

 

* * *

 

모든 병아리들은 그 병아리로 태어나기 전엔 작은 알껍데기 안에서 태어난 생명이었습니다. 그 생명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몸을 키우지요. 그리고 몸이 거의 다 완성해 갈 무렵에 그 알 껍데기에 꽉 끼게 됩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얼마나 꽉 끼겠어요. 얼마나 부대끼겠어요. 그 느낌을 꽉 느낄 때서야 병아리는 영그러진 자신의 부리로 알을 깰 생각을 합니다. 못 참겠다는 거지요. 아주 본능적으로요. 열심히 알의 한 부위를 그 부리로 깹니다. 뿌직, 툭 뿌지직. 알이 깨지고, 샛노랗고 축축하게 젖은 날개를 꿈틀거리며 말그스름한 한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게 되지요.

 

그 알껍데기가 없었으면 그 병아리는 생명을 키우지도 못했겠지요. 그리고 다 컸음을, 이제는 나와야 할 때임을 그 껍데기가 준 압력이 없었으면 몰랐겠지요. 그런 병아리에게는 그 껍데기를 깰 수 있는 부리가 이미있었습니다. 그렇게 고작 1mm도 안 될 그 껍데기가 준 압력이 그 병아리를 키우고, 세상에 나오게 합니다. 우리가 계란후라이할 때 툭 치면 그저 툭 깨지는 그 껍데기가 병아리들에겐 세상이고, 맞서야 하는 압력일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마주한 이 압력도 사실 더 큰 시각에서 보면 툭 하면 깨질 수도 있는 얇은 껍데기일지 모르잖아요. 겁먹지 말자구요. ‘날 키우려고 이 압력이 들어왔다. 압력이 들어왔으면 이미 내 안에 그걸 깰 부리가 완성되었다는 소리다. 됐구나. 오케이 그럼 이 압력을 환영하며 나는 이제 깨보련다. 곧 깨질 거야. 압력은 좋은 신호야.’라며 오늘도 우리에게 들어온 압력을 환영해 봅시다. 우리는 이미 좀 더 창조적인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