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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정리중)>

기분 좋은 무장 해제

기분 좋은 무장 해제

 

유독 느긋했던 오늘 오후, 제가 사랑하는 두 남자와 교대 캠퍼스를 유유자적 거닐었습니다. 햇살은 따듯했고, 불어보는 바람에 봄내음마저 느껴졌습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풋풋한 연인들의 다정한 대화소리. 우리 셋은 캠퍼스 구석 빈 농구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두 남자는 퀵보드를 타고 잡기놀이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웃음소리가 마르지 않습니다. 그 기분 좋은 깔깔 소리를 들으며 저는 농구장 철장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따뜻한 햇살, 데워진 공기, 가벼운 몸, 적당히 좋은 기분 그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몇 바퀴 걷자 서서히 덥습니다. 저는 얇은 셔츠 위에 입은 스웨터를 벗습니다. 벗은 스웨터를 근처 벤치에 두러 가려 하자, 이미 우리 두 남자는 벗을 수 있는 건 다 벗어젖히고 놀고 있더군요. 덕덕 우리 세 식구의 겉옷들이 쌓입니다.

 

따뜻한 햇살은 우리 세 가족을 무장해제 시켰습니다.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은 결국 따뜻함이구나 싶습니다. 최근 제 자신이 누군가를 이토록 푸근한 따뜻함으로, 기분 좋게 무장 해제시킨 적 있었는가 돌아봅니다. 올 봄에는 제 자신에게 따뜻함을 무장하여,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기분 좋게 자꾸 무장 해제시켜버리는 그런 만남들을 자주 가져야겠다고 다짐하는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