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기록(정리중)>

[出師表] 의미 있는 침잠(沈潛)의 출발점에 서서

[出師表] 의미 있는 침잠(沈潛)의 출발점에 서서 

 

안녕하세요. 홍성향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주까지 있었던 각 지역마다 순회하는 출장도 마무리 지었고, 몇 건의 프로젝트들도 마감하였습니다. 한 집에 함께 사는 두 남자가 각자의 자리로 나서고 난 후 찾아온 집 안의 고요한 공기 속에 머무르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제 밤에는 코치더코치(supervision)’가 있었습니다. 제게 코칭교육(3Cs I Basic)을 들은 서울, 부산 교육생 여러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코치더코치, 제가 가장 긴장하면서도 사랑하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는 저란 사람이 이 분야의 한 전문가로서 여러분께 뭘 드릴 수 있을까(나는 전문가란 말을 붙여도 될만큼 전문성은 있기나 한가란 날카로운 자기검열)란 속 좁은 두려움, 망설임, 불안이 있지만, 그러면서도 결국 무선해전(3Cs가 말하는 코칭철학)한 여러분들께서 채울 시간임을 알고 있기에 그저 함께 함의 힘을 믿고, 살짝 거들 뿐인 그 유연함만 제가 갖추면 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마무리될 때 즘 Skype 속 여러 네모 창 안에 계신 여러분들의 눈빛을 바라보는 것이 제 삶에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요. 어제 코치더코치도 역시 좋았습니다. 최근 교육을 듣고 코칭 실습을 이어가시는 분들부터, 이제는 어엿한 인증코치로서 자신의 전문성을 촘촘히 채워가고 계신 분들까지. 서로가 만들어 내는 장 안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당초 1시간 30분을 계획했던 코치더코치는 2시간을 꽉 채워 마무리 짓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Skype 종료 버튼을 누르고, 이어폰을 벗고, 노트북과 펜을 내려놓고 가만히 멈춘 제게 이런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일을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가?’

 

그것은 아주 깊은 내면에서 올라온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또한 늘 제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떠난 적 없던 질문이었습니다. 애써 그 질문을 못 본 척하며 외면한 적도 있었고, 그 질문을 열렬히 마주하고 답하려 수백 번 다짐해도 실제 스케줄이 너무 바빠서 무산된 적도 많았습니다. 그랬던 그 질문이 모든 일정을 마친 일요일 자정에 다시 제게 노크를 해 온 것입니다. 똑똑똑. ‘너도 알고 있지? 이제 이 질문은 마주해야 한다는 것.’

 

코칭을 처음 접한 분들에게 제가 지금 알고 있는 코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전문성이 있다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왠지 모를 변화의 시점에 놓여있음을 느낍니다. 정말 제가 좋아하는 이 분야에 대한 깊이를 탐구해야 할 시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이 분야가 왜 정말 좋은지에 대해다른 이들에게 합리적으로 알릴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할 시점입니다.

 

 

솔직히 말해, 저보다 똑똑한 누군가가 앞장서서 제가 마주하고 있는 이 주제에 대해 통렬하게도 멋진 전문서를, 컨텐츠를 딱! 하고 내 주어 그걸 그저 받아먹고 싶은 심정이 제게도 있습니다. 사실 이 마음은 그 동안 제가 이를 외면할 수 있게 도와준 멋진 핑계였지요. 난 바쁘니까. 난 지금 내 일이 많으니까. 솔직히 지금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엔 아니야’, ‘아니야’.

 

그리고 오늘 아침 그 작업을 외면해 온 진짜 이유는 고독함에 대한 거부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마주하고 있는 해야 할 일’, ‘주어진 일은 고독한 길임을 잘 압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다른 이들에게 유익할 것은 알지만 사실 저는 많이 괴로울 그 길. 편안하고 싶어 외면했던, 고요히 혼자만이 들어가 만날 수 있는 그 길에 대해 이 아침, 묵상합니다.

 

이제는 때가 왔구나, 아니 이제는 해야 할 때구나 싶습니다. 지난 8년 간 코칭을 통해 경험했던 모든 것 그 아래에 있는 본질, 그리고 그 이론적 배경. 제가 강의하고 다니면서 수없이 편안히도 내뱉었던 겉이 번지르르했던 진리. 그 이야기들에 대해 의미 있는 침잠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 침잠이 어떤 경험들로 연결될지 아직 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게 네가 가진 강점이 뭐니라고 물었을 때 올라온 답은 바로 셀프코칭력이었습니다. 제가 해 온 일이 제게 답해주는 듯합니다. ‘너는 무선해전한 존재란다.’, ‘너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어.’, ‘그저 너 스스로에게 묻고 하나씩 해 나가면 돼.’

 

오늘부터 이 의미 있는 침잠의 기간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종종 이 공간에 남기겠습니다. 저도 제가 잘 해나갈 것을 (늘 의심하면서도) 믿으려 노력하고, 떠오른 것을 실제 행동으로 담담히 옮겨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 저를 어쩌다 마주치시면 때때로 응원해주세요. 깊은 고독함에 있으면서도 잊지 않을 겁니다. 제 곁에 제가 참 좋아하는 당신이 계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