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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정리중)>

[셀프코칭] “코치님, 정말 아무 것도 할 힘이 나질 않아요.” | 나(Self)의 ‘무기력’이 내게 말해주는 것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홍성향입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매번 글을 써야지, 블로그에 하고 있는 것들을 올려야지 하면서도 이제야 오랜만의 포스팅을 올리는 저를 마주하는 오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지 궁금해요. :-)

 

저는 최근 이틀 간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 있으며, 침대 & 이불과 ‘물아일체’ 의 삶을 보냈습니다. 정말 이상했어요. 무언가 해야 할 것도 알겠고, 해야 한다는 동기도 확실히 있는데 왜 이 몸이 한 걸음도 움직이질 않는지. 마치 책상 앞 의자에 가까이 가면 안 될 거라도 설치되어 있는 것처럼 그 공간만 피해서 움직이는 저와 만났답니다. 그런 저와 격렬히 마주하고 나서 오늘 아침에서야 그 무한 매력의 침대 & 이불 세상에서 벗어나 바깥으로 나와 할 일들을 사부작사부작 하나씩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이틀 간 무기력한 저를 돌아보다, 얼마 전 코칭고객으로부터 받은 코칭일지에서 그녀가 제게 토로한 ‘무기력’에 대해 읽었던 것이 기억났고, 그에 대한 통찰 몇 가지가 제 안에 정리되어 이렇게 글로 남겨 둡니다.

 

* * *

 

“코치님, 저는 제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잘 알고 있거든요. 그렇게 살기 위해서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도 너무나 잘 알고 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걸 해낼 힘이 제 안에서 안 생겨요. 아침에 일어나서 그렇게 해 봐야지 하다가도 결국 못 해내는 저를 만나요. 그런 제가 너무나 싫어요. 알면서 안 하는 제가 바보 같이 느껴져요. 아, 진짜 어떻게 하면 힘이 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끝없이 무기력한 스스로와 만나고 있는 당신께

 

먼저 현재 스스로를 무기력하다고 표현하기까지, 당신이 겪었을 우여곡절 삶의 순간들을 상상하며 함께 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까요.

 

Q1 자기 자신을 이렇게 무기력하다 표현할 때, 당신의 마음은 어땠나요?

Q2 그리고 무기력한 스스로에 대해 당신은 어떤 사람이라 느끼고 있나요?

 

오늘 저는 당신이 마주하고 있는 ‘무기력’이 당신에게 말해주는 것들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1 지금 당신이 무기력하다는 것은 최근 그 기력을 어딘가에 (열렬히) 썼다는 증거입니다

먼저, 무기력이란 단어를 살펴보고 싶어요. 무기력(無氣力): 어떤 일을 감당할 기운과 힘이 없음이란 뜻이지요. 저는 여기에서 무(無)에 대해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기운과 힘이 없다라는 것 자체에 포인트를 두지 않고, 그렇게 기운과 힘이 없어질 때까지의 그 나름의 ‘사연’이 있겠다란 것에 포인트를 두고 싶어요. 즉, 당신에게 그렇게 기운과 힘이 없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겠다란 것이지요. 원래 당신이 본디 가지고 있는 일정량의 힘이 분명 있었는데, 당신은 그 힘을 오늘 이전 과거 어딘가에 ‘썼으므로’, 현재 없을 뿐이란 겁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깊은 무기력에 빠질 땐, 무기력에 빠진 나를 ‘비난’하는 것을 멈추고, 잠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 걸어보세요. ‘어, 나 지금 무기력하네. (이렇게 기운과 힘이 다 없어질 정도로) 최근 내가 무언가에 기운과 힘을 많이 쏟아 부은 것이 무엇이었지?’ 그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분명 당신이 지금 무기력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언가에 열과 성을 다해 한 것이 있을 겁니다. 그것에는 뭔가 눈에 보이는 일들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쓴 것들도 포함되겠지요.

 

이렇게 스스로의 무기력을 잘 마주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찾아온 무기력의 이유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나란 존재가 원래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라, 다 사연(이유)이 있어 이런 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긍정의 힘을 스스로에게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2 무기력에 도달할 정도로 기력을 열렬히 쓴 당신의 삶을 인정(수용)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기력을 다 쓸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자의이든 타의이든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란 것은 기력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기력을 다 써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이루고 싶었던 것이 있었단 거겠지요.

 

이 때 바닥까지 다다를 만큼 기력을 다 소진해야 했던 스스로를 잠시 멈춰 인정(수용)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작업은 기력을 다 쓴 결과로 무언가를 성취했느냐, 그래서 그것과 관련된 결과를 이뤄냈느냐와는 무관합니다. 무언가에 힘을 다 쓰고 나면, 반드시 그 힘을 다 쓴 과정 자체에 대한 깊은 인정(수용)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마치 열심히 달리고 난 사람에게 반드시 잠시 어딘가에 걸터앉아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지요.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제가 코칭하면서 만나는 분들 중 대부분 분들께서 이러한 기간 자체를 갖는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불안감)을 갖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해낸 것도 없는데, 그런 나를 쉬게 해 줘도 될까.’, ‘해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기간을 가져도 될까?’, ‘어서 힘을 내야 하는데, 이렇게 지지부진한 시간을 가져도 될까?’ ...

 

기운과 힘은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채워져야,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채워짐은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마치 씨앗에게 새싹을 내는데 있어 마술로 그 날 밤 바로 새싹을 낼 수 없듯, 우리 자신이 무언가에 기운과 힘을 내기 위해서는 그 기운과 힘이 채워지는 일정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더구나 죄책감(불안감)의 에너지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오롯하게, 내가 이토록 무기력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어딘가에 기력을 다 소진했던 스스로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 시선을 바탕으로 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일정 시간에 대한 스스로의 허락,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치 씨앗과 아기를 돌보듯이 자신의 생명을 돌봐야 합니다.

 

당신이란 존재는 원래 무기력하고, 아무 것도 못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란 존재는 의도적인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이란 존재에게 잠시라도 저절로 서서히 기운과 힘이 차오를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 허락해주세요.

충분히 당신의 존재에 기운과 힘이 채워지면,

당신과 세상이 아무리 말려도 당신이란 존재는 무언가 해내기 위해 꿈틀거리고, 절로 한 걸음 일어설 사람입니다.

 

 

 

오늘 이 하루에 당신와 저에게

아주 작더라도 그 기력이 채워지는 사소한 행복들이 피어나기를 바라며

 

2019-05-15

희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