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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정리중)>

나는 왜 이 힘든 '라이프 코치'란 일을 계속할까

오늘 오후 10시반, (총 3개월에 거쳐 10번의 세션을 진행한) 한 개인 코칭고객과의 코칭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다. 즐거웠다. 언제나 그렇듯 온전한 몰입으로 누군가와 진심어린 대화를 한다는 것은 기쁨이다. 더군다나 3개월의 여정을 마치는 날, 서로가 처음 합의한 방향 위에 우리가 걸어온 길을 나누는 순간은 가장 벅차다. 오늘 마무리 된 코칭 프로젝트 역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마음으로 2시간에 거쳐 마무리지었다. 그렇게 Facetime의 빨간 종료 버튼을 누르고, 나는 코치로서의 모자를 벗었다(평소 코치로서 역할 옷을 내려놓았단 표현으로 모자를 벗고 쓴다는 비유를 즐긴다). 

 

후우-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깊은 숨이 뱉어나왔다. 단순하게는 몇 일전부터 이 고객의 지난 9번의 세션을 정리한 코칭리포트를 작성하면서 오늘의 마지막 세션을 디자인하며 가진 알게 모를 긴장감이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깊게는 본 고객과의 계약을 체결하고 코칭관계를 시작한 시점부터 알게 모르게 몸에 묻어있던 (나의 코칭고객의 코칭목표를 향한) 팽팽한 긴장감이 풀어져 나가는 소리였다.  수고했다. 성향아. 스스로에게 나즈막히 되내였다. 빠르게 (내 개인의 일상으로) 에너지를 전환하기 위해 곧장 엉덩이를 떼어 방을 나섰다가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나에게 두 가지 질문문장을 되내인다.

하나. 나는 왜 이 쉽지 않은 '라이프코치'란 직업을 계속 할까? (그것도 10년 넘게 말이다. 무엇이 이 일을 계속 지속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라이프코치'란 일을 계속 하게 하는가?

그러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질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본업(라이프코치)을 잘하고 싶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에게 다시 묻는다.  둘. "어떻게 하면 내 본업을 더 잘할 수 있을까?"

 

 

그렇다. 결국 이 문장과 다시 만난다. '나는 내 본업을 잘 하고 싶다.' 나는 본업을 잘하는 이들에 눈이 간다. 그들은 항상 나에게 영감을 준다. 본업을 잘한다는 것이 말이 쉽지, 그 본업의 본질(핵심)을 이해한 사람이, 그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파고드는 고통을 이겨내고-버텨내고)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막상 그 본업을 할 때에는 너무나도 즐기며 심플하게 잘 해내버리는 모습. 그 모습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장면이다. 

 

나는 이러한 '내가 나의 본업을 잘하고 싶어서', 지금 이미 하고 있는 일들 너머 내 본업이 어떤 업인지, 무엇을 하며, 그 하는 일 너머의 본질엔 뭐가 있는지 탐닉해 보고 싶다. 그것도 아주 깊게. 그리고 그 여정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누군가에게는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영감을 일으킬 수 있길 바란다. 

 

나는 코칭이 좋다. 내 일이 좋다. 나는 지난 10년 간 내 일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진실로 화두삼고,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 왔다. 그 시도들은 누군가 가르쳐 준 것들이 아니어서 된통 크게 당한 실패담이 수두룩 하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그런 실패담들이 우리의 피와 살이 됨을. 지금의 나는 그 많은 실패 위에 서 있고, 그것이 나의 자원임을 잘 안다. 내가 내 일을 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것임을 이 밤 깨닫는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이미 내 삶에, 내 자신에게 있다. 내가 해야할 것은 오롯이 앉아 그 지난 나날을 바라보며 그 경험들을 '재해석'하는 시간을 갖는 것일 뿐임을 기억해본다.

 

 

 

+ 이미 두 질문 중 첫 질문에 대한 답이

내가 쓴 이 글의 첫 문장에 오롯이 등장한다. 너도 사실은 알고 있었지? 장난치듯 말이다. 

그 답은 바로 '즐거웠다'. 그래, 즐거움 말고 이 쉽지 않은 길을 10년 넘게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