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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정리중)>

20120325-20120331: 나만이 늘 코치인 것은 아니다.

(편하게 존칭을 생략하여 씀을 양해하여 주십시오)

 실상  '코치'라는 직함이 명함에 쓰여있기도 하고, 혹자는 그런 명칭으로 나를 처음 접하였기에 늘 그렇게 불리우는 관계도 많으며, 실제로 코칭펌에 속하여 일도 하고 있으니, '코치님-'하고 불리우는 그 소리가 내 귀에는 어느 덧 편하다. 

 하지만, 모든 일엔 '직업병'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나의 '직업병' 중 하나는 바로 늘 스스로가 스스로를 '코칭'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 진짜 짜증나.', '저 사람 진짜 이상하지 않냐?', '아 우울하다.', '오늘은 아무 것도 하기 싫어.'라는 내면의 소리가 나라고 없겠는가. 그러면 나는 나에게 말한다. '무엇이 정말 짜증이 나는 걸까. 실상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기에 그런 걸까. 그 원하는 것에 내 삶의 소명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끊임 없이 나에게 자문자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직업병'은 어쩌면 정말 천국같은 축복일지 모른다. 적어도 한 번에 욱할 일도 되짚어 역지사지할 수 있는 힘, 내가 무엇을 꿈꾸며 살고 있는지 잊지 않을 수 있는 힘, '나다움'을 늘 유지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나에게도 왜 '욱함'이 없겠는가.
 한 순간이라도 '내 인생의 유일한 그 꿈, 설레이는 그 꿈'을 완전 망각하고 그냥 막 사는 순간이 없겠는가.



 코치에게는 자신의 'Being(존재)'을 늘 살피고, 그에 따르는 'Doing'(행동)인지 늘 점검하는 습관이 정말 중요하다. 그 자체가 되지 않는 이가 타인의 'Being'까지 알아차릴 수 있는 '경청'과 '함께함'을 해낼 수 없기 때문. 하지만, 그 자체가 워낙 고차원적인 '수련'에 가까운 것이기에 코치는 정말 한 워크샵당 몇 백만원을 투자하여 늘 새로운 지식에 열려있어야 하고, (심지어는 아는 지식도 반복해서 다른 형태로 들으며 한 번 더 새로운 면을 인식하려 하고) 매 코칭 세션 전에는 명상 등을 통하여 자신의 ego가 비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아티스트 코칭'에 나오는 '모닝페이지 쓰기'가 그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수많은 머릿 속의 생각들로도 내 마음이 잘 해결이 되지 않는 날이 있다. 정말 간혹 찾아 오는데, 사실 그럴 때 나는 사람을 잘 만나지 않고 혼자서 쉬는 편이다. 이 글을 써야 겠다 마음 먹은 그 날도 그렇게 혼자서 '향초' 피우고 쉬고 있었다가 잠들려던 찰나였다. 머릿맡의 핸드폰이 울렸다. 메시지였다.

 "성향아~ 월요일 아침이 다가오고 있는 깊은 밤에 잠은 안 오고 뒤척이다 문득 니 생각이 난다. 잘 지내지? 정신없이 살다보니 시간은 잘 가네. 성향아, 우리 돌아오는 주엔 시간 맞춰서 티타임이라도 갖자~ 어때? 보고싶다 ^^"

 가슴이
멍하게 따뜻해져 와서 바로 회신하지 못하고 미소 지으며 잠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머물게 하려고.
 '아 이 순간에 누군가가 내 생각을 하고 있구나'란 그 생각만으로도 내 모든 몸과 마음이 위안을 받아 미소가 지어졌다.





 누군가가 내 생각을 해 준다는 그 위안. 
                                   같은 장소가 아니지만 같은 시간 속에 나를 누군가가 기억해 내 생각해 준다는 그 위안.  

 
 

 '코칭'을 하다보면,  그렇게 <수많은 워크샵과 Practice를 통해 깨달은, 최고의 성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그 코칭 설계>를 전혀 시도해 보지 못했는데도, 그저 정말 마음을 다해 그 코칭세션 동안 그 사람과 함께 '존재함'으로 그 고객의 잠재된 내면의 힘이 발휘되어 그 고객이 존재다움을 피어낸 케이스가 더 많음을 잘 아는 나이다. 실은 그 사람을 생각해 주는 '그 마음', 그 '진실됨'이 코칭을 흐르게 한다.




 고백한다.
 나만이 '코치'인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코칭 자격증이 없어도, 코칭 워크샵 하나 듣지 않았어도, 당신이 생각이 나 바로 행동으로 옮겨진 그 '메시지'하나만으로도 '코칭의 효과'-위안, 나 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 따뜻함, 용기 등-를 줄 수 있는 그대가 매 순간 나에게는 '코치'임을. 
 그대들이 있기에 내가 늘 에너지가 가득차 '코치'로써 '코칭'을 업으로 그리고 삶으로 피어낼 수 있음을.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함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