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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정리중)>

아침이 밝아오면, '이사'합니다 : 이사 준비하며 깨달은 '두 가지'에 대해

이사를 앞둔 밤입니다. 지금 집에서의 마지막 밤이지요. 방금 전 먼저 잠들러 들어간 남편이 말하길, '매번 자기가 마음을 내려놓았었는데, 이번엔 내가 내려놓고 자기가 못 내려놓네.' 라며 씨익 웃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늦은 시각까지 쉬이 잠이 오질 않아 책상에 앉아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거실에 앉아 집을 둘러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자꾸 잠기는 밤입니다. 

 

2012년에 결혼하여 5번째 이사입니다. 늘 짧게 살 거란 생각을 하며 이사를 다니다가, 이번 집엔 오래 살 생각으로 인테리어 시공이라는 것도 해 보며 스스로에게 처음 제대로 질문했습니다. "집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지?"하고 말이에요. 이 질문은 집을 구하러 다닐 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 세 가족에게 집이란 어떤 기능을 하며,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제법 꾸준히 고민했습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얻은 단어는 '쉼(휴식)' '소통'이었습니다. 세 가족이 각자의 삶을 살다가 귀가하여 온전히 쉬는 곳, 그리고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피붙이 가족들과 함께 소소한 소통을 나누며 사랑주고 받는 곳. 그것이 우리 가족에게의 '집'이란 공간의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집을 고를 때도 잘 쉴 수 있고, 잘 사랑할 수 있는가를 보며 고르게 되었으며, 이 집을 인테리어 할 때도 우리 세 가족이 가장 잘 쉴 수 있는 공간 구성으로, 우리 가족이 보다 더 속닥하게 하나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상상하며 지어나갔습니다. 페인트색, 공간마다 들어갈 가구들, 하나하나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이사를 앞두고 짐만 옮기는 지금, 지난 준비 여정을 보니 그것은 곧 '우리(가족)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구나라고 깨닫습니다. 

 

#벤자민무어 에서 First Light과 Lavender Lipstick을 고르고, 필름은 Super White Wood를 골랐다. 가장 우리 가족 다움으로.

 

"어떤 공간에서 우리 가족은 가장 우리 가족 다운가?"

 

이 질문에 남편과 도면을 그려두고 자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리 가족 다움을 뒷받침해줄 방향으로 선택사항들을 결정해갔지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결정들에 만족스럽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만 두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 무리하지 않는 삶, 자주 웃고 춤추는 삶, 소유하는 것보다 더 많이 '경험'하는 삶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기로 이야기하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기쁨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사 준비 과정에서 제가 두 가지 명확하게 알아차린 것이 하나있습니다. 바로 이사짐을 추리는 작업 중에 깨달은 것이지요.

 

먼저 하나, 제가 정말 소유할 것과 소유하지 않을 것의 기준이 명확해졌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 <심플하게 산다>에서 말하듯, 정말 내게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지 않는 삶으로 점점 나아가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렸습니다. 집의 모든 살림을 가장 '간소화'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앞에 두고, 이 물건이 꼭 나에게 필요한가를 2-3차례 묻고는 물을 때마다 '그럼, 필요하지'란 확신이 없다면 세상으로 내놓았습니다. #당근마켓 에 올려서 이웃과 나누기도 하고, 아는 지인들 중 필요한 곳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사람이 가진 에너지 장은 물건이 가진 에너지장과 충돌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있는 공간에 물건이 많을수록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에너지를 거기에 쓰며 삽니다. 예를 들어 보지 않는 책을 보며 저거 읽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한다던지,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을 보며 저거 정리해야 되는데 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유명 호텔 등에서 우리가 충분히 쉼을 느끼는 것은 정말 하얀 무채색이 물건이 거의 없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저 역시 이번 집에서 그것을 더 시행하기 위해서 작업실(일하는 공간) 외에는 가급적 해당 공간의 기능에 꼭 필요한 물품 아니고는 대부분 이별했습니다. 이 부분은 이사가서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무척 깨어있는 태도로 주의하려합니다. 무언가 소유한다는 것에 대해서요. 

 

 

 

둘, 공간이 아니라 다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가족이요. 가족과는 뭐랄까,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인 것은 잘 (머리로) 알지만, (가슴은) 종종 잊기도 합니다. 너무나 익숙하달까요. 같이 눈 떠서, 같이 귀가하고, 집에 모여 같이 잠드는 이런 소위 '일상'을 함께 나누는 사이일수록이요. 저는 그런 가족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고,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려고 방문이나 여백의 벽에 '사진'을 갤러리처럼 붙여두곤 합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려합니다. 사진은 그 순간의 공기, 온도, 향기, 기분, 소리 등을 떠오르게 합니다. 사진은 누군갈 기억하게 합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 사진을 붙여두고, 음미하며, 소원해졌다 싶을 때 연락하기도 하고, 그 사람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잊지 않고 일상에서 사랑하고 노력합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아주 사소한 것, 안부전화, 안부 메세지라도요. 

 

그리고 기억합니다. '사이좋게 지내자'고요. 사랑할 시간도 모자르다고요. 재작년 가을, 사랑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입관식을 하던 날, 퉁퉁 불은 살 그 육체 속에 눈 감은 할머니의 영혼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3일 간 장례를 치르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며 끝없이 중얼거렸던 문장. '인생이 참 짧다'였습니다. 

 

 

우리 가족의 (어느 정도 알게 모르게 합의되어가는) 가훈이랄까 "사랑할 시간도 모자르다"는 것 

 

 

이렇게 짧은 삶에서, 제가 제일 소중하다고 머리로 가슴으로 나의 사람들과 가급적 '사이좋게' 지내는 것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사 과정 모든 순간에도 '사람'을 중심에 두려 노력했습니다. 함께 했던 이웃들, 이미 함께 하고 있던 사람들 등.. 그리고 다짐해봅니다. 이사간 집에서 우리집 두 남자를 더 사랑해주며 사이좋게 지내기로 말이지요. 그리고 새롭게 만날 이웃들도요. 그리고 새롭게 만날 아들 학교 이웃들도요. 지금 우리 가족이 나아가는 '대안교육'이라는 길이 비록 낯설고, 낯선만큼 두려움도 크지만, 이렇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 기준문장도 바로 '인생이 참 짧다'라는 였으니, 그저 덤덤하게 나아가보렵니다.

 

제 삶에 다가오는 이 새로운 삶, 새로운 공간을 가슴 깊이 축복하고 환영하려는 새벽입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기운으로 제 '일'을 더 잘 하는 올해가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공간에서 여러분들도 부디 평안하세요.

 

2020년 2월 7일 오전 2:26 

희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