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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기록(정리중)>

[라이프코치는 어떻게 일하는가] 01. ‘그대’를 통해 ‘나’를 본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일요일을 보냈다. 일요일에 나는 코치가 아닌 그저 나 자신으로 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세상이 소위 말하는 삶과 일 사이의 균형을 위해서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가족 안에서, 내 지인들 안에서 그저 ‘나’로 존재하는 안식일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런 평범하고도 소중한 그런 오늘 일정에 ‘저녁 9시’ 코치로서의 일정이 딱 하나 적혀 있었다. 바로 내가 존경하는 L코치님과의 피어코칭(peer coaching)시간이었다. 늦게 들어온 남편과 아이를 맞이하고, 아이를 씻기고, 허기진다는 아이에게 간단히 주먹밥을 먹이고, 남편에게 아이 재우는 것을 부탁하고 노트북, 핸드폰, 이어폰을 챙겨 고요히 방에 들어왔다.

 

그렇게 저녁 9시. 따르릉. 반가운 이름이 뜬다.
“코치님, 해피뉴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코치님, 어찌 지내셨어요?”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안부인사(small talk)에서 바로 코칭대화로 이어진다. 역시 우리의 토크는 바로 본질로 들어간다는 농담도 빠뜨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코치가 어딜 가겠냐며 함께 웃는다. 그렇게 먼저 내가 코치님을, 다음은 코치님에게 내가 코칭을 30분씩 주고 받았다. 작년 말, ‘우리 다가올 새해 2020년에는 월 말마다 각자의 삶을 같이 나누는 시간을 갖자’고 약속했고, 그렇게 오늘 저녁 서로 바삐 살며 못 본 날이 언제냐는 듯, 금새 어제 만난 것처럼 주거니받거니 삶을 나누었다. 그렇게 시간 흐르는 줄 모르고 즐거이 대화를 나누다 어느 새 저녁 10시, ‘우리 2월 28일 금요일 저녁 9시에 만나요. 각자 잘 지내다가요.’하며 통화를 마쳤다.

L코치님과 언제부터 알고 지냈을까. 적어도 8-9년 되지 않았을까. 그 세월은 지금의 우리를 낳았다. 오늘 코치님이 나눠주신 코치님의 고민과 그 고민의 흐름들 너머 그 코치님의 진실된 마음을 나는 그 동안 지켜보아왔기에 그저 안다. 그리고 그 어떤 대화내용 모두 너머 나는 코치님이 정말 잘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코치님도 그러하셨다. 나란 사람을 그저 아신다. 나는 내 이야길 쉽게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잘 털어놓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삶의 쌓인 경험들이 만든 불필요한 신념일 것이다. 나의 표현들이 다소 남들이 쓰지 않는 표현들, 고민들이기에, 나는 내 이야길 담아주실 수 있는 분에게만 나누는 경향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L코치님은 말해도 될까 말까란 고민을 1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눠도 되는 분이셨다. 나를 내가 가진 어떤 면으로만이 아닌 그냥 나란 한 ‘존재(being)’로서 충분히 바라봐주시는 분이심을 알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다른 이들에게 부끄러워, 혹은 부담스러워 말 못한 3년 뒤 나의 비전을 공유했다. 우리는 이를 ‘기분 좋은 족쇄’라 부르며 함께 웃었다.

 

따뜻하다’. 우리가 대화를 마치고 난 후에 나눈 단어는 따뜻하다였다. 각자 코치로서 자신의 일에 마음 담아 최선을 다해 달려온 만큼, 알게 모르게 켜켜이 쌓인 외로움, 고독함, 혼란스러움 등의 마음들이, 단 한 명의 마음 맞는 동료 코치와의 대화로 눈 녹듯 녹았다. 우리 둘의 고민은 필시 ‘코칭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라.’, ‘코칭을 진심다해 잘하고 싶음이라.’, ‘코칭이란 본업을 코치답게 해내고 싶기 때문이라.’. 나는 그렇게 나의 동료 L코치님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다시 한 번 맞구나라는 확신, 그리고 혼자가 아니구나란 위로, 힘을 얻었다. 진심담아 코치라는 일을 하시는 그 분을 통해 나의 진심, 나를 보았다. 참 좋은 동료코치시다.

그래, 2010년, 코칭을 처음 만나 그 가슴벅차게 떨렸던 그 초심. 그 초심을 다시 이 저녁 내 가슴에 담는다. 이렇게 꾹꾹 담은 이 초심으로 나는 또 한 주 내 일, 코칭을 잘 할 힘으로 삼을 것이다.

 

 

 

+ 추신: 그렇게 뭉클한 마음을 붙들고 코칭 중 들어온 메시지들을 확인하다가 지난 해 1년 간 진행했던 ‘라이프-그룹코칭 <project 2019> 멤버들의 사진이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 5명의 멋진 여성들은 각자 스카이프 화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뭉클. 울컥. 내가 진심을 담해 심은 씨앗이 그녀들로 하여금 1년의 그룹코칭을 마친 후, 코치인 내가 안녕-한 후에도 그들끼리 <project 2020>을 이어나가기로 한 것이다. 진정 코칭의 가진 힘이다. 코치가 더 이상 없어도 되는 날을 맞이하는 것. 멤버 중 한 두 분이 인스타그램에 우리가 쓰던 월말 보고양식을 캡처한 것을 올린 것을 보고 각 개인이 그 작업을 이어가고 계신가보다 했는데, 오늘 받은 사진을 통해 보고서도 쓰고, 스카이프로 그룹대화도 매월 코치(진행) 역할을 돌아가면서 맡고, 했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것도 ‘2시간’이나.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 사진 한 장이 다시 내게 말했다. “성향아, 의심하지 마라. 네가 걷는 길이 옳으니, 지금처럼 굳건히 가거라.”

작년 한 해 내가 힘을 드리려고 했던 멋진 여성 5분이 2020년 2월 2일 내게 다시 그 힘을 돌려주신다. 그들의 해맑은 미소를 통해 나는 내가 걸은 작년의 길이 옳았음을, 잘 걸어왔음을 본다. 정말이다. 당신을 통해 나를 본다.

 

bgm. 강아솔 - 매일의 고백

https://youtu.be/qI173blgf4s



 

 

*피어코칭(peer coaching): 코칭수련자 혹은 전문코치 동료 간 코칭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